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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와인에 대한 짧은 단상
Category : My Happiness/지평 Date : 2008/07/14 12:00
2008/07/14 12:00 2008/07/14 12:00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함께 남미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이 만든 책입니다. 저는 공저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입장이지요. 지금도 이것 저것을 배우기에만도 벅찹니다.

image 
▲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  지평, 푸른길, 2005.11

우 리 지평 선생님들이 답사를 다녀온 몇 개월동안 다시 남미에 관한 글쓰기와 원고 검토를 통해 나온 책이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입니다. 그때, 제가 원고를 썼지만, 들어가기 애매하고, 또한 모자라는 필력때문에 싣지 못한 글이 있는데, 그 글을 블로그에 옮겨볼까 합니다.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은 남미 답사를 시작하였던 2005년 1월 7일의 인천-L.A 구간의 대한항공 기내입니다.

1부 - 커피와 와인에 대한 짧은 단상
2부 - 서로 다른 문화의 뿌리, 커피와 와인이 남미에서 꽃을 피우다.


커피와 와인에 대한 짧은 단상

25 일 일정의 남미 답사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남미에서 만나게 될 낯선 문화와 사람들, 경관에 대한 기대가 벅차다. 나름대로 준비해온 자료집과 책들을 꺼내어 읽는다. 미국까지 가는 11시간(?)의 비행 속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보다 졸다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내가 반복하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시간에 따라 주어지는 기내식을 꼬박꼬박 맛나게 챙겨먹으면서 스튜어디어스에게 연신 커피를 달라 와인을 달라 졸라댔던 것이다. 워낙 친절하게 음료를 준다니까 마지못해 마시는 것이 반반이었을까?

장거리 비행기 여행 속에서 책을 꺼내 읽으면서는 커피를 달라고 한다. 책을 보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일은 어울리는 일이다. 커피 안에 있는 카페인이 뇌의 이성적인 활동을 돕고, 충분한 각성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책 읽기가 지치면 잠깐의 잠을 청하거나, 남미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을 위해서는 와인을 한잔씩 달라고 한다. 뇌의 이성적 활동 도우미가 커피이고 뇌의 감성적 활동의 도우미가 와인이 된 셈이다.

비행기가 한참을 날아가고 커피와 와인을 각각 두세번이나 마신 후, 와인잔을 빙그르르 돌리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지금 마신 커피와 와인이 풍부한 곳, 커피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과 한국 와인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칠레를 생각하며, 남미에 가면 이 커피와 와인에 흠뻑 취해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어두컴컴한 비행기속에서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난다. 그 기억 중 하나는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가서, 은행 구석에 있는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뽑아 달라고 졸라대던 내 모습이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코코아 한잔은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은행에 가는 가장 큰 이유였다. 유년시절의 그 어느 날도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갔고, 코코아를 뽑아 먹기 위해 동전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자판기 앞으로 달려가서 동전 하나를 넣고, 버튼을 꾹 눌렀다. ‘아차!’ 코코아를 누른다는 것이 블랙커피로 잘못 누른 것이다. 내 손에 쥐어진 동전 하나와 따듯하고 달콤한 코코아가 부른 설레임에 의한 실수였다. 몇 초 후에 내 손에 쥐어진 것은 검은 색깔의 향기가 좋은 ‘블랙커피’였다. 집에서는 늘 ‘커피를 마시면 몸에 안 좋아. 그리고 머리가 나빠져.’라며 어른들만 마신다는 음료, 커피가 내 손에 쥐어졌다. 호기심 반, 기대 반에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본다. 집에서 부모님이 마시는 커피의 은은한 향의 기억이 감돈다. 그런데, 맛은 완전한 실망이었다. 쓰디쓴 그 맛은 엄마가 억지로 먹이는 한약보다도 더 씁쓸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왜 이리 쓴 음료를 어른들은 맛있다고 마시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 모금 맛본 블랙커피를 들고 엄마에게 들고 가 건네주니 엄마도 블랙커피는 싫다고 하시며 손사래를 저으신다. 블랙커피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 어린 시절의 처음 맛본 커피 맛은 참으로 씁쓸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커피에 대한 여러 가지를 물어봤단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커피를 왜 마셔?’부터 시작된 내 질문은 점점 구체화 되고 엄마는 그저 웃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셨던 것 같다. 그 질문 중 몇 가지가 분명히 기억에 남는다.

“엄마, 커피는 어디서 나는 거야?“

- “글쎄, 커피나무에서 자라겠지.”

“그럼 커피나무는 뒷산에도 있는 거야?”

- “아니, 커피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안자라. 이름자체가 외국말이잖아.”

“그럼 어느 나라에서 자라?”

- “응. 브라질”

“브라질? 축구 잘 하는 나라?”

- “응. 지구 반대편에 있는 축구 잘 하는 나라.”

그랬다. 내 기억 속의 브라질은 축구를 잘하고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였다. 더 보태자면, 지구 반대편에서 맛도 없는 쓰디쓴 커피를 생산하는 이상한 나라였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맛도 반대로 느끼는 줄 알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집에 있는 세계대백과 사전을 하나하나 넘기다 커피에 관한 나름대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모든 백과사전이 그러하듯, 식물에 대해서는 주원산지와 주생산지가 어디인지를 표기해두고 있었다. 브라질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커피나무는 알고 보니 에티오피아라는 듣도 보도 못한 나라가 원산지라고 적혀있다. 그때쯤, 어떠한 상품이나 식물이 많이 나는 곳이 꼭 원산지가 아님을 알았게 되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다양한 힘에 의해 상품도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서울에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그들의 고향이 대부분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도 이와 같으리라.

어른이 되고 언제부턴가는 커피라는 음료 외에 와인이라는 술을 한잔씩 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TV나 영화에서 보던 와인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선남선녀의 저녁식탁을 더욱 빛내는 붉은 빛깔의 아름다운 술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열두 제자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 외에는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포도주가 점점 대중화 되기 시작했다. 대형 마트에 가면 예전에는 양주와 같은 술이 가장 번듯한 진열대를 차지했으나, 요즈음은 주류 매장의 절반 가량은 전 세계 곳곳에서 생산된 와인으로 진열되어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최근의 웰빙 문화와 와인의 궁합이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한듯 한 느낌을 준다.

좀 특별나다고 생각되는 날에 마시는 와인을 대중화 시킨 것은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오늘날 경제사회 구조가 우리 생활에 침투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전통주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우리가 마시는 와인은 수입을 해온다.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와인하면 뭐니뭐니해도 프랑스 와인일까? 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로 쳐주는 듯한 이미지가 영화나 TV를 통한 간접경험에서 구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이탈리아나 독일의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최근에는 호주 와인도 괜찮다는 평을 들은 적도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은 와인의 그 품질보다도 와인 생산을 위한 혁신 지구(와인 클러스터)로서 더 이름이 나 있어 여러 사람들의 연구대상지역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그래서 온갖 기후를 다 가지고 있는 나라 칠레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수준급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최근, 칠레와 FTA가 통과되고, 칠레 와인의 국내 소비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사실은 지나가는 뉴스로 몇 번이나 들었다. 그래서 그런것일까? 언제부턴가 칠레하면 칠레 와인이 가장 먼저 생각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2004년도에 흥행했던 우리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이 하던 대사 때문인 것 같다. 당시 사기꾼 역할의 배우 박신양 (최창역 분)이 상대역인 염정아 (서인경 분)와 나누는 대사에서 칠레 와인의 상품가치가 더욱 도렷히 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인경 : 와인 같은 거 먹을 줄은 알죠?

창혁 : 허 와인! 우린 또 와인 좋아하지~ ...칠레 껀 안보이네?

인경 : 칠레와인이 좋아요?

창혁 : 아니! 머, 프랑스꺼 못 먹는건 아닌데... 2차 대전 때 독일 놈들이 프랑스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사람이 을마나 많이 죽었겠어. 근데, 포도밭이 남아 나겠냐구. 오리지날 그냥 다 타 없어졌지. 그리구 나서 다시 심었는데 포도 자라는데 하루 이틀 걸리나. 근데 칠레에는 오리지날이 남아있다~ 이거죠. 잘 모르는 사람들이 프랑쓰 와인~ 프랑쓰 와인~ 찾더라구. 이거 바가지 좀 썼겠는데...

염정아가 살고 있는 집에 여러 종류의 와인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프랑스산 와인이었던 모양이다. 보통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치는 분위기에서 프랑스와인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양새가 좀 날것이다. 하지만, 지중해성 기후에서 병충해 없이 자란 칠레의 포도로 담근 와인은 가격대비 품질에서 당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다.


하지만 위 영화 장면에서의 박신양을 생각해보면,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정말 의문스러워서, 최근에 글을 올리면서 다시 재검색해 보았습니다. 검색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박신양의 역할이었던 '창혁'은 역시 그럴듯한 사기꾼인거죠??

물 론 이 설명은 정확한 사실이 아닙니다. 전쟁으로 포도밭이 쑥대밭이 됐지만 이는 나중에 더 좋은 포도밭을 재건하는 데 보약이 됐죠. 예를 들어 ‘샤토 무통 로쉴드 1945년산’과 '슈발 블랑 47년산'은 전설의 와인으로 불립니다.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프랑스 보르도의 양조장들이지만 45년과 47년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데 최고의 해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전쟁의 폐해로 수확량은 적었지만 그 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났기에 그만큼 더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와인전쟁>이라는 책을 보시면 됩니다. 번역책으로 나와 있는데 와인을 몰라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손용석의 와인이야기 '타짜'들이 마시는 와인 中


칠 레는 서쪽으로 태평양,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은  국가다. 동서로는 겨우 평균 180Km정도에 지만, 남북으로는 길이가 무려 4200Km나 된다. 남한의 남북 길이에 비교하면 10배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 칠레 북쪽은 덥고 건조한 기후가 지속되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만년설이 있을 정도로 하나의 나라 안이지만 기후변화가 심하다.
이런 지형적, 기후적 특성 때문에 주변 국가들로부터 독립될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와인생산국가들이 필록세라(phylloxera)균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때, 칠레는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양군의 와인 다이어리] 박신양도 작업할 땐 칠레 와인


같은 한 자리에 열한시간을 앉아 있으면서,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커피와 와인을 거푸 마셨다. 은은한 커피향과 달콤씁쓰르한 와인의 맛은 어른이 된 내게 너무나 익숙한 맛들이다. 그리고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이 커피의 왕국이고, 와인의 제국이라는 사실에 곧 이어 맛볼 본토의 커피와 와인에 대한 풍부한 맛의 상상을 해보며, 와인 잔 속에 조금 남아 있는 붉은 포도주가 아까운 듯 마저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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