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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에 진행되고 있는 촛불 집회에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저는 현재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며, 촛불 시위의
도화선이 된 우리 청소년을 사랑하는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촛불 문화제 및 시위에 열심히 참여하지 못한 속죄의 마음으로 촛불
집회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 중에 청소년, 촛불 등을 주제로 제 생각을 잠시 정리해봅니다.
아울러 7.31에 있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서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어둠을 극복할 수 있는 오늘날 세상이다. 물리적인 어둠을 쫓아내기 위해 불을 밝히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어운가 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에 손에 초를 들고 불을 밝힌다. 조상님의
차례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촛불이 이제 시청 앞, 광화문 일대를 연일 밝히고 있다. 도대체 누구의 눈이 멀어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연일 초를 밝히는가? 푸른 기와집 아래 그대의 눈은 분명 ‘조중동’에 최적화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대의 귀는
‘강부자 내각’의 소리만 골라 듣는 필터가 달려 있음이 분명하다.
눈 멀고 귀 먹은 그대는 아쉽겠지만, 이 세상은 그대가 원하는 ‘조중동’스러운 사람만 살고 있지는 않다. 당신에게 직격탄을 날린
우리의 청소년들! 그 손에 촛불이 처음으로 쥐어졌던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무한
경쟁을 하고, 하루 4시간씩 자면서 좋은 대학 가려고 바둥거린다. 보충수업에 치이고, 학원에 쩔어있다.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찬란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 가기 위해 오늘의 삶을 학교에, 학원에 저당 잡힌 채 살아간다. 가슴 설레는 연애도 참아야하는
번거로운 일이 되었고, 하고 싶은 놀이도 참아야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뇌교육을 받아왔다.
오늘의 삶을 버리고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그대가 선물하는 ‘미친소’와 같은 불안감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이다.
18살에 먹은 미친소 한 점이 10년 후,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을 망칠 수 있다면? 15년 후,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고생스럽게 얻어낸 안정된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그 원인이 된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책상 앞에서 연필을 잡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곧 다가올 미래에 88만원 세대로 합류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는 ’미친소‘정책은 88만원을 받건 888만원을 받건 불특정 소수의 인생을 완벽하고도 허무하게 마감시킬 수 있는
미확인 지뢰를 그들의 앞길에 뿌려 놓는 행위이다. 그 지뢰를 밟을 ‘확률이 0.0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선동하지
말라’는 그대와 그대 주변의 소위 ’권력자‘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아니올시다. 0.01%의 위험확률이
있으니 우리가 걱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다못해 친절한 보험회사에서 광우병 보험이라도 만들기를 바라는 것이 그대들의 심정
아니겠는가? 지금 고집부리고 있는 그대의 실정은 미래 세대에 대한 명백한 범죄 행위이다. 우리의 미래 세대들은 자신의 삶의
주인된 권리로서 자신의 삶을 방어하고자 촛불을 든 것이다. 제발 배후 세력 운운하는 이야기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배후 세력으로 지목받는 조직 중 하나인 전교조 조합원이다. 열성 전교조 조합원이 아닌 그저 회비 내는 수준으로, 대의적
지지를 표명하는 조합원이다. 어떻게 하다가 올해는 본인이 우리 학교 분회(최말단 학교 조직)의 분회장을 맡게 되었다. 덕분에
한달에 한두번은 지회 집행부 회의에 참석하여서 이런 저런 교육적 이슈를 듣고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5월
초 어느 날, 서울시 교육감 공정택이 “촛불 집회에 배후 세력(전교조를 지칭)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난 어이가
없었다. 그 전날 지회 집행부 회의가 있었는데, 공정택 교육감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 시점부터 조직적인 집회 선동 준비
작업(?)을 기획했어야 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건데 공정택 교육감의 망언 전날의 주제는 ‘4.15 공교육 조치 철회’와
관련된 사항이었다. 나름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모여서 학생들을 거리로 내 몰아 낼 작전 회의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교육감의
발언을 듣고 보면 그의 용량도 2MB를 넘어서지는 못할 듯하다. 그러니 출장비 주어가며 장학사와 교감을 거리로 내 몰았지
않는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시려 참 용쓰신다.
공정택 교육감에게도 한 말씀 드린다. 학교 현장에서 우리 청소년들과 만나고 대화하여 보시라. 그들은 어리지만 똑똑하고 현명하다.
그들은 우리나라 현대 역사에서 처음으로 ‘조중동’ 언론 카르텔의 정신적 지배를 받지 않은 인터넷 키드 세대이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만졌고, 인터넷을 접해왔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주제에 대하여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배웠고, 남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수많은 매체를 접하면서 비교 분석하는 것이 체화된 지금의 청소년에게 더 이상 ‘조중동’의 사기 수준의
기사는 먹히지 않는다. 올바른 시민이라면 지금의 청소년을 보고 우리 미래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청소년이 먼저 밝힌 촛불은 오늘의 우리의 희망이 되었고, 촛불을 든 청소년 자체는 대한민국에게는 미래의 희망이다. Web
2.0의 참여, 공유, 개방의 정신을 갖춘 청소년들이 다음 선거에 나선다. 이들의 체화된 집단 지성은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의
사탕발림으로 넘어설 수 없다. 이번 촛불 집회를 경험하였다면, 권력자들은 어서 빨리 깨우치기를 바란다. 이명박 정부와 그 주변
세력들에게 다가올 진정한 뜨거운 촛농 세례는 다가올 몇 년 후이다. 나 역시 뜨거운 촛농 세례로 나를 괴롭힌 그대들을 엄중히
심판할 것이다.
우리의 촛불이
누군가의 인위적인 조정이라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촛불’의 본질에 대한 단상을 전한다. 촛불은 우리의 생과 미래에 대한 사랑과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눈 멀고 귀 먹은 그대에 대한 연민이다. 국민을 섬기겠다면 당신은 당신 방에 작은 촛불 하나를 키워 둘
것을 권한다. 어둠을 밝히는 그 촛불은 당신이 가야할 길을 제시할 것이며, 스스로 타 녹아내리는 그 몸은 당신이 그 토록
강조하는 ‘섬김’의 기본을 깨우쳐 줄 것이다. ‘촛불’을 키고 가만히 보시라. 미묘한 바람, 심지어는 숨소리에 조차도 흔들리지
않던가. 인공의 빛을 내뿜지만 참으로 자연스럽게 불을 밝히는 것이 촛불이다. 촛불은 전기불처럼 죽은 불이 아니다. 반응에 따라
타오름을 달리하는 것이 촛불 본연의 성질이다. 촛불을 애써 외면한 그대나 그대의 수하들이 무엇이라 외쳐대면, 촛불이 떠 퍼지고,
더 커지는 이유를 이제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끝으로 학교 교사로서 초중딩과 싸우는 이명방 정부가 불쌍해서 충고하나 하겠다. 두려워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