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가 나왔다. 박빙의 승부 끝에 서초-강남-송파 연합군의 강력한 표 결집으로 공정택
후보가 당선되었다. 서울시 25개 구에서 집계된 표심은 분명한 지역적 계급차이를 반영하고 있었다. 25개 전투 지역에서 주경복
후보는 17개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아쉬운 패배를 맛봐야 했다. 반대로 공정택 교육감은 '서초-강남-송파'라는 지역의 수성전에서 완벽하게 승리함으로써 다수의 전투에 패하고서도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즉, 주경복 후보가 승리한 17개 지역은 군소 전투지로 전락되는 것이다.
서초-강남-송파 지역 외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 '군소 지역'으로 평가 받는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난 내가
말한 '군소 지역'에 살고 있는데.... 어느 덧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시대가 되고 있다. 표심이
분명하게 차이가 나게 되고, 분명한 소득차이가 형성되고, 정보 격차가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느 덧 개인 신상 자료에서
'주소'라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정보의 가치로서 상당히 높은 지위를 획득하게 된 셈이다.
파주의 K중학교에 근무하는 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아팠다.
우리 반 아이들이 40명 정도가 있는데 30명 정도는 신도시 아파트 아이들이고, 나머지 10명은 구 읍
혹은 면 소재지에 사는 소위 말하는 '촌놈'이에요.. 그러나 한 학기 동안 두 번의 시험을 치루었는데, 읍 혹은 면 소재지에
살고 있는 어떤 아이들도 반 등수로 30등 안에 들어가 본적이 없어요. 구읍 소재지의 10명은 그들만의 리그로 아랫마을을
형성하죠.
거주 공간의 격차가 전방위적으로 침투하고 있는 이 작은 학교의 현실은 오늘날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위말하는 군소 지역의 선전은 그저 '격려'의 내용 밖에는 의미가 없다. 1등 구를 자처하는 '서초-강남-송파' 지역의 선택이
서울시의 선택이 되는 모습이다. 이미 서울이라는 큰 땅에서도 '그들만의 리그'는 형성된지가 오래인 듯하다.
지리학의 기본적인 원리 중 한가지는 비슷한 것들을 한 군데 모이게 한다. 즉, 집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는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 지역에 거주하면서 비슷한 철학 및 정치적 관점을 공유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만의 집적
효과로 그들만의 철학과 관점은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띄기도 한다. 어제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는 '투표를 하러 가야한다.'는
방송이 나왔다고 한다. 누구를 찍으라고 하지 않았으니 선거법 위반은 아니고, 민주 사회에서 독려하는 투표 권장 행위는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해 달라고 투표를 독려한 것은 아닐테지?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 성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해 달라는 내용이 아닌가?
사람사는 세상, 저 마다 생각이 다를 수 밖에~ 또, 달라야 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들이 자신의
계급, 이제는 그 계급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의 벽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음이 아쉽다. 공간에 포섭된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의 이익을 위해 투표라는 제도적 행위에 동참했을 것이다. 사실 이 것이 오늘날 민주 정치를 욕망의 정치로
승화시키는 기본 개념이기고 하고... 이러한 공간에 대한 욕심이 결국 지난 번 총선때는 '뉴타운 바람', 지난 번 대선에는
'땅박이 뽑기'로 이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즉, 계급 정치가 공간 정치로 진화하고, 공간 정치는 공간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곳에 그 표심을 던지고 있는 양상이다.
강남... 그들의 정치에 도전한 군소지역은 패했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지난 번 총선때 집값 좀 올라서 강북의 강남
행세를 하던 노원 지역도 어느 정도 자기 정화 과정을 거친 것일까? 노회찬이 떨어지고 홍정욱이 붙은 노원도 주경복 후보 표가 큰
표 차이로 앞선 결과를 나타냈다. 1년 10개월 뒤에는 어떤 선택이 옳을지 또 기다려봐야겠다. 내가 뽑지는 않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한 공정택 교육감이 어떤 정책을 펴 나갈지 지켜보고 관찰하는 수 밖에 없다. 공정태 교육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힘을 내어 박수를 보내본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품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갖춘 배려의
미덕이 서울시 교육 정책에 스며들길 바란다.
덧붙이는 생각) 영등포 뭥미?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지역별 득표 현황을 공정택 후보의 득표를 주경복 후보를 중심으로 비교한 표(위 ↑)를 보면, 지역
성격상 좀 아이러니한 부분은 영등포가 저기에 왜 끼어있을까 하는 것이다. 비록 비슷하게 찬반이 나왔지만, 일찌기 공정택 후보(이제
교육감이군요.)가 영등포는 전교조가 많은 곳이라고 촛불 집회 배후 세력 운운하였을 때, 직접 거론하였던 곳이다.
강남-서초-송파와의 지역 정서보다는 강북과 지역 정서가 가까운 곳인데... 왜 유독 영등포만 이런 선거 결과가 나왔는지 의아
스럽다. 영등포에서도 비슷한 인구규모의 다른 지자체처럼 3,000~4,000 표 가량만 앞섰어도(판세를 뒤집지는 못하지만...)
하는 생각이 못내 아쉬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5~6
월에 진행되고 있는 촛불 집회에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저는 현재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며, 촛불 시위의
도화선이 된 우리 청소년을 사랑하는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촛불 문화제 및 시위에 열심히 참여하지 못한 속죄의 마음으로 촛불
집회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 중에 청소년, 촛불 등을 주제로 제 생각을 잠시 정리해봅니다.
아울러 7.31에 있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서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스위치만 누르면 어둠을 극복할 수 있는 오늘날 세상이다. 물리적인 어둠을 쫓아내기 위해 불을 밝히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어운가 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에 손에 초를 들고 불을 밝힌다. 조상님의
차례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촛불이 이제 시청 앞, 광화문 일대를 연일 밝히고 있다. 도대체 누구의 눈이 멀어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연일 초를 밝히는가? 푸른 기와집 아래 그대의 눈은 분명 ‘조중동’에 최적화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대의 귀는
‘강부자 내각’의 소리만 골라 듣는 필터가 달려 있음이 분명하다.
눈 멀고 귀 먹은 그대는 아쉽겠지만, 이 세상은 그대가 원하는 ‘조중동’스러운 사람만 살고 있지는 않다. 당신에게 직격탄을 날린
우리의 청소년들! 그 손에 촛불이 처음으로 쥐어졌던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무한
경쟁을 하고, 하루 4시간씩 자면서 좋은 대학 가려고 바둥거린다. 보충수업에 치이고, 학원에 쩔어있다. 청소년들의 대부분은
‘찬란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 가기 위해 오늘의 삶을 학교에, 학원에 저당 잡힌 채 살아간다. 가슴 설레는 연애도 참아야하는
번거로운 일이 되었고, 하고 싶은 놀이도 참아야 한다. 그래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뇌교육을 받아왔다.
오늘의 삶을 버리고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그대가 선물하는 ‘미친소’와 같은 불안감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이다.
18살에 먹은 미친소 한 점이 10년 후,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을 망칠 수 있다면? 15년 후,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고생스럽게 얻어낸 안정된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그 원인이 된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책상 앞에서 연필을 잡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곧 다가올 미래에 88만원 세대로 합류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하는 ’미친소‘정책은 88만원을 받건 888만원을 받건 불특정 소수의 인생을 완벽하고도 허무하게 마감시킬 수 있는
미확인 지뢰를 그들의 앞길에 뿌려 놓는 행위이다. 그 지뢰를 밟을 ‘확률이 0.0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선동하지
말라’는 그대와 그대 주변의 소위 ’권력자‘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아니올시다. 0.01%의 위험확률이
있으니 우리가 걱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다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