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와 같은 책이 있었다. 만들어 놓고도 그런 책이 있었냐고 질문도 들어보지 못한 그런 책이다. 경기도의 지지서라고 보면 되는데, 국토지리학회에서 용역을 수행한 책이다.
이 책의 원고 중 일부를 이용원 선생님 (이하 용원이 형 혹은 용형)과 내가 주축이 되어서 편집(?)하였고, 경기 북부 지역의 원고 함량 미달에 대해서는 당시의 '우리 국토'팀이 투입되었다.
오늘도 우연히 하드 디스크를 뒤적이다.... 평택에 관한 글이 있길래 한번 긁어붙여 본다. 용원이형과 나의 평택 답사에 따른 글이었는데.. 지금 보면 많이 모자라고 부끄럽다. 글의 시작과 마무리를 용원이형이 했기 땜시... (나는 항구, 산업, 경제 쪽을 썼다.) 용형에게 허락을 얻어야 하는 것이나.. 뭐 이미 출간도 되어 있고, 인터넷으로도 올라와 있으니... 편집되기 전 원문을 올리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용형과 내가 꿈꾸던 답사. 낭만적이고, 한가한 여행 같은 답사였다. 서해대교를 바라보며, 조개찜을 먹었던 생각이 아득거린다. 들고 있던 카메라 덕에 기자 취급 당하고(당시는 지금보다 SLR이 덜 흔했으므로...) 그 덕에 조개 하나라도 더 얻어 먹은듯 했다. 그리고 용형도 음식점에 오면 음식점 주인 아저씨 등과 이야기를 참 잘나눈다. 답사꾼의 기질이 있는 분이다.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절반정도는 답사를 같이 못했지만... 동두천에서의 인터뷰라던지, 말로만 들었던 5.18 인터뷰 등은 기억에 무척남는다.
각설하고.. 아래 내용은 경기지오그라피 중 평택 부분의 지지이야기이다. 이 글을 기준으로 편집을 했으므로, 원문과는 약간 차이가 발생할수도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바로가기를 클릭해 e-book을 보시라. 전국의 도서관 및 경기도내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는 다 보급을 했다는데... 봤다는 사람은 울산에 계신 이태국 선생님 외에는 아직 소식을 못들었다. ㅎㅎ
참.. 당시 대추리 농성이 이슈였던 지라, 평택 대추리 이야기는 정말 적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부 발주 프로젝트의 한계 때문에 그냥 막판에 얼버무린게 다다. 그런 글들을 보면 아쉽고, 무엇인가 큰 잘못을 한 것 같다.
나의 생각이 다 옳지는 않지만, 그 당시 진실로 믿고 있는 글들을 써내려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얼마전에도 내키지 않은 원고를 살짝 건드린 적이 있다. 또, 길이길이 후회가 되겠군.
봉황(鳳凰)이 춤추는 도시 - 평택
들판의 바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땅과 하늘이 얼굴을 맞댄 곳을 보기 어렵다. 그러나 평택에 서면, 물론 야트막한 산이야 멀리 보이지만, 평평한 들판에서 뜨는 해며, 달을 바라볼 수 있다. 산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그저 바다에 떠있는 섬처럼 점점이 흩어져 있어 평택은 그야말로 들판의 바다이다. 조선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좌청룡 우백호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산이 뒤에 머물고 들판이 남쪽으로 펼쳐져 산으로 둘러싸인 곳을 소위 ‘명당’ 이라 여겨 그런 곳에 고을을 발달 시켜왔다. 그러나 평택에는 조상들이 말하던 그런 명당자리는 찾기가 힘들다. 좌청룡은 서쪽 하늘로 승천했고, 우백호도 한남정맥을 따라 백두산으로 올라가고 없다. 숨을 곳이 없던 이 고장은 경기에서도 가장 작은 고을로 소외되어 있었고, 그저 쌀이나 생산하고 갯벌에서 조개나 캐면서 다른 고장을 배불려 주던 곳이었다.
평택이 영글면 경기도가 굶지 않는다 하늘에서 평택을 내려다보면, 계절마다 그 빛이 다르다. 봄엔 연두빛으로 파릇하고, 여름엔 녹색으로 우거지며, 가을엔 황금색으로 기름지고, 겨울엔 황토 빛으로 물든다. 바로 이 고장의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는 논 때문이다. 전라도의 호남, 나주평야와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평택평야는 기름진 경기미를 생산해 내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옛적에 고산자 김정호가 전국을 다니면서 지도를 그리다 호남평야에 이르러 드넓은 땅을 보고, 또 그곳에서 나는 쌀이 조선을 먹이고 있음에 감사하여 절을 올렸다고 하는데, 경기도에서 가장 넓은 벌판인 이곳 평택을 둘러보았을 때는 반 절 쯤 하지 않았을까?
평택은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좋은 흙, 넓은 벌판, 넉넉한 물 그리고 햇볕 잘 드는 좋은 기후조건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기름진 쌀과 시원한 배를 길러낸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쌀은 경기도 일대 주민의 뒤주를 채워주는 역할을 해왔으며, 배는 한국인에게는 물론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한국의 대표과일이 되고 있다. ‘평택이 영글면 경기도가 굶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이렇듯 풍성한 고장이 되어왔기에 평택 농악도 신명을 낼 수 있었다. 크게 우리나라에는 다섯 개의 농악이 존재해 왔는데 전라좌도와 우도, 영남농악과 영동농악 그리고 경기농악이다. 그 경기농악의 중심지가 바로 평택이다. 농사와 농악이 따로 떨어진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닌 고로 왜 경기농악의 중심지가 평택인지를 바로 이 농악이 대신하여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2005년 10월에는 한국의 5대 전통농악패들이 모여 평택 땅에서 신명난 굿판을 벌이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주말마다 상설 농악공연이 열려 뭇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어 평택의 중요한 자랑거리가 되어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안성 옆에 평택, 천안 위에 평택 충청도와 경기도의 중간에 자리한 위치적인 특성 때문에 평택은 경기와 충청을 오가다가 경기도에 적(籍)을 두게 되었다. 충청과 경기의 점이지대라고나 할까. 그런 연고로 평택은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보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삼남지방이라 불리는 충청 영남 호남 등의 지역에서 서울인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어 유명세를 탔던 안성이며 용인 그리고 지금은 평택이 되어버린 진위에 비해 평택은 왜소하기만 했다. 평택의 중앙을 흘러 서해로 빠지는 강도 각각 안성천, 진위천이며, 평택 앞바다의 이름도 아산만이고, 평택과 이웃하여 북쪽인 화성시와의 경계가 되는 물도 남양호이다. 평택의 위치를 물을 때, 늘 안성과 견주어져야 했고, 천안을 거론해야만 했었던 과거.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어느 곳으로 길이 지나는가에 따라 중심지가 달라지듯, 평택의 중심도 여러 차례 이동해왔다. 걸어서 이동하던 시대의 평택은 진위였다.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그리로 통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향교가 자리한 것으로 봐도, 1900년에 개교하여 100년이 넘은 초등학교가 이곳 진위에 있는 것으로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평택의 또 하나의 중심지는 팽성. 대동여지도에 보면 옛 평택은 바로 현재 팽성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진위나 팽성이나 조선시대에는 지역행정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경부선 철도가 진위와 팽성을 비껴나가면서 평택의 중심지는 평택역이 자리 잡은 현재의 평택으로 옮겨갔다. 비록 일제에 의한 역사이긴 하나, 길 따라 중심지도 옮겨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도보에서 철도와 고속도로로 변했듯이 이젠 바다가 평택에 손짓하고 있다. 평택의 무게 중심은, 항구가 들어설수록, 중국과 동남아시아와 세계와의 교역이 늘어날수록, 점차 서쪽으로 서쪽으로 옮겨 가게 될 것이다. 평택을 찾기 위해서 안성과 천안을 이야기 해야만 했던 과거가 역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해가 지는 서쪽에서 꿈틀대기 시작하는 평택의 역동성 보통 붉은 해가 기운차게 솟아오르는 동해의 일출에서 역동성을 느낀다면, 붉은 해가 차분하게 가라앉는 서해의 일몰에서는 정적이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평택 역시 그렇게 따듯하고 편안한 해가 지는 고장이다. 하지만, 평택의 서해안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면 그 모양은 여느 서해안과 같이 정적이고 차분하지만은 않다. 해가 저무는 평택의 바닷가에서부터 역동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평택항! 국가 3대 국책 항만으로 지정되어 동북아 물류허브를 향하여 힘찬 도약을 내딛기 시작한 곳이다. 바다를 향한 허허벌판에는 지금도 굉음을 내는 대형 로울러가 땅을 다지고 있고, 트럭 수십 대는 일개미처럼 부지런히 흙과 모래를 실어 나르고 있다. 모래를 뿌리는 대형 크레인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듯, 고운 모래를 흩뿌리고 있다. 조용했던 평택의 앞바다를 기회의 땅으로 만들어가는 평택항의 토지매립공사 지금도 진행중이다.

평택의 희망, 평택항 1986년 LNG선박이 처음으로 입항하면서 본격적인 항구로 개항된 평택항은 곧이어 국제무역항으로 지정되어 성장하는 듯하였으나,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택항의 위상과 규모는 서해와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인천항의 보조항이나 지방에 설치되는 소규모 신항만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 속에서 중국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환황해권의 경제․인구의 잠재력이 높게 평가되어 서해안 시대를 담당할 새로운 물류 허브가 필요한 시점에서 평택항의 개발은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는 사업이 되었다. 인천이라는 수도권 중심항구가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물류 처리 능력과 배후단지 건설이 쉽지 않은 여건을 고려한다면, 21세기 동북아 시대에 걸맞는 선진 물류 처리 능력을 갖춘 '준비된 항구' 평택항 개발 사업은 늦은 감이 적지 않다.
평택항을 동북아 물류 허브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계획은 다가갈 수 없는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다. 평택항의 비교우위를 조목조목 따져본다면,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천혜의 항만이다. 아산만 깊숙한 곳에 위치한 평택항은 육지속의 바다로서 태풍이나 해일의 피해에 대하여 여타 항구에 비하여 안전성이 높고, 안개나 폭풍과 같은 선박 운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상현상도 서해안 지역의 경쟁항(인천항, 군산항)1) 보다 현저히 적은 편이다.
둘째, 대내외적인 입지의 우수성이다. 평택항은 안으로는 수도권의 우수한 산업 인프라와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이며, 바깥으로는 최대 무역대상국으로 급부상한 중국 동해안의 주요 항구들과 최단거리2)에 위치해있다. 경기도의 관문역할을 하는 수도권 중심항만으로서 서울, 수원, 성남 등의 수도권 주요도시와 충청지역의 주요도시인 청주, 대전 등의 대도시가 모두 80Km 내외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 어느 항구보다 높은 접근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내륙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외적으로도 중국의 항만뿐 아니라, 2004년 기준으로 세계 10개 항만 중 6위까지 포진한 동아시아 6개 지역항3)과도 최단거리에 위치해 수출․입 물류비 절감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셋째, 내륙 교통과의 연계체계가 우수하다. 평택항은 서해 바다를 끼고 있는 국토의 서단부이지만, 이는 지리좌표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2001년에 완전 개통된 서해안 고속도로는 평택항의 대동맥 역할을 하며, 평택의 동쪽 안성을 지나 음성까지 연결되는 '평택-음성간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육상교통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와 이미 연결되었고, 곧 중부고속도로와 연결하기 위하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따라서 국토의 서쪽 끝부분중 하나인 평택에서 서해안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에 쉽게 전급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작은 지방도가 거미줄처럼 평택의 넓고 평평한 땅을 가로지르고 있다. 평택을 일컬어 '사통팔달'하다고 말하기에 모자란 감이 있다면, 철도 교통을 살펴보아도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경부선이 머물렀다 가고, KTX가 지나고, 곧 KTX역사가 들어서기 위한 물밑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또, 평택항 물류지원을 위해 별도로 평택항 산업철도 부설도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서울 어디에서나 전철을 타고 평택을 오갈 수 있어서, 평택은 더 이상 자가 운전을 해서 가야한다거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 아닌 수도권 실질적인 생활의 공간으로 편입이 되었다. 즉, 평택의· 서쪽은 세계를 향해 열려있고, 평택의 내륙은 대한민국을 사통팔달으로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새롭게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평택항은 아직 미흡한 점도 적지 않다. 항구와 관련된 항만 인프라의 효율적인 구축이 필요하고, 약 470여만평 규모로 조성될 배후단지를 활용한 종합물류기지가 형성되어 평택항의 부가가치를 더욱 높여주어야 한다. 또한, 수도권의 관문항 역할을 하고 있는 인천항과의 경쟁에서도 차별화된 전략을 구축하여야 항만을 효율적으로 운영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같은 문제도 적절한 투자재원을 확충하여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최근, 평택항을 두고 불거진 문제 중 하나는 평택항의 호칭이다. 1986년 개항이래 줄곧 ‘평택항’이라는 말을 사용하여왔으나, 현재 단계별로 건설되고 있는 평택항은 당진군의 수면 일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평택항의 호칭을 둘러싸고 이웃 도시인 당진군과의 지역갈등이 발생되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평택항의 정식명칭은 ‘평택・당진항’으로 결정이 되었다. 7여 년간에 걸친 지역분쟁의 끝에 다다른 결론이고, 그동안 평택항의 성장을 위해 혼신을 다했던 평택시민과 관계자측면에서는 제 살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에 비유될 만한 일이지만, 동북아 물류 허브 거점도시로 도약을 위한 한걸음의 후퇴라 여기며, 경기도와 충청도가 대승적인 차원에서 상생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지혜로움으로 그 동안의 갈등을 희망으로 승화시켜야할 것이다.

평택항에서 불어오는 산업구조 변화의 바람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쌀을 재배하고 있는 평택의 전통적인 중심산업은 뭐니뭐니 해도 벼농사를 중심으로한 농업이다. 여전히, 평택의 농업인들이 양질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새로운 평택쌀의 브랜드를 창출하여 경쟁력을 강화시키려는 현대적인 상업농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다 고개를 돌려 평택항을 바라본다면, 평택은 대규모 신항만을 중심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우뚝 설 물류도시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할 대형 하역작업용 크레인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고,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자동차 전용 수출단지의 신차들은 가지런히 정렬된 모습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울산항의 경관을 연출해낸다.
평택이 갖추고 있는 사통팔달의 내륙연계망과 항구의 시너지 효과가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평택항의 ‘자동차 전용 수출단지’이다. 2001년 첫 자동차 수출을 한 짧은 역사를 뒤로하고, 2004년 한해 동안만 약 77만대의 차량을 전세계를 상대로 선적하였다. 전통적인 자동차 수출항인 울산항의 수출 차량대수가 약 80만대라고 본다면, 시작 4년만에 규모의 격차를 따라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평택항에서 수출되는 77만여대의 차량은 어디서 왔을까? 평택 자체가 77만대 이상의 수출 차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도시일까? 아니다. 평택이 품고 있는 자동차 공장은 평택항 인근의 쌍용자동차 외에는 없다. 평택의 쌍용자동차 뿐 아니라, 북쪽으로 이웃한 화성시의 기아자동차, 남쪽으로 접하고 있는 충남 아산의 현대자동차 등에서 생산된 수출 차량의 전초기지 역할을 평택항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정체성이 모호하여, 그 위치를 논하기 위하여 안성과 천안을 들먹였던 평택은 이제 지나치는 땅이 아니라 최종 목적지의 땅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나가는 도시에서 찾아가는 도시로의 위상 변화는 평택항이 개선한 대표적인 지역의 이미지이다.
주변지역의 반란 - IT산업에서 결실을 거두다. 평택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중 하나가 ‘주변지역’이여서 평택이 서러웠다면, 평택은 이제 역으로 ‘접근성이 높은 주변지역’으로 주변지역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작은 자동차 공장 하나를 품고 있지만, 여타의 다른 항구를 제치고 자동차 수출의 핵심 지역으로 급부상하게 된 일이 대표적이나, 평택이 주도한 주변지역의 반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평택의 부지런한 농부들이 가을에 농사의 결실을 거두듯이, 경기도청의 투자진흥과 및 평택시 관계자들의 결실도 이곳 평택 벌판에서 영글어 가고 있다. 그들의 수확품목은 다름 아닌 외국의 첨단기술 업체의 직접투자이다. 지금 평택의 현곡 산업단지에 가면, 약간은 낯선 공단환경이 펼쳐진다. 하얀색 계통으로 새로 지은 깔끔한 느낌의 산업단지이기 때문이다. 간판을 둘러보아도 낯선 이름뿐이다. 알박(ULVAC), 호야(HOYA) 등 쉽사리 간판만을 보아서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쉽게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위 회사들을 비롯한 현곡 산업 단지에 입주한 업체들은 반도체와 LCD분야에서 핵심부품을 공급하는 세계적인 업체들이다. 평택에는 우리가 이름을 들어 알만한 반도체 공장도 LCD공장도 없는 곳인데, 그들이 평택으로 온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평택의 ‘접근성 높은 주변지역’의 정체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입지한 기업들이다. 평택에는 큰 공장이 없다. 하지만 평택에서 접근 가능한 큰 공장들은 많다. 특히, 수도권 일대에서 발달한 첨단산업을 공략하기 위한 산업이라면 충분히 평택은 기회의 땅이 되어줄 수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기흥에 위치하고 있다. 평택에서는 30분 거리이다. 삼성전자가 LG-필립스의 파주 LCD 산업단지에 맞서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고 있는 탕정 클러스터 역시 평택에서 30분이면 닺을 수 있는 곳이다. 경기 북부에 LCD핵심 클러스터로 성장하고 있는 LG-필립스 LCD 단지 역시 서해안 고속도로를 통하면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하여 있고, 이천의 하이닉스 반도체와도 한 시간 가량이면 접근이 가능하다. 반도체와 LCD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제품 점유율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의 핵심 동력 산업이다. 반도체와 LCD부품 산업을 하는 회사라면, 그들의 제일 큰 고객이 있는 한국에 자리를 잡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물류비를 절약하고, 세제 혜택의 이익을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고민 끝에 다다른 최종 입지의 선택은 평택이었다. 수도권 주변에 형성된 반도체-LCD 첨단 산업 클러스터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평택은 그들에게 약속된 땅이나 다름이 없었다.
2005년 말 현재, 외국기업전용단지인 현곡산업단지 22만평을 비롯하여 포승국가산업단지, 어연ㆍ한산산업단지, 추팔산업단지 등 4개 단지 총 36만평에 미국ㆍ일본ㆍ독일 등 10개국 63개 기업이 공장을 가동 중이거나 입주가 확정돼 공장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의 주변지역으로 첨단산업에서 소외되어 있던 평택은 쟁쟁한 첨단산업 클러스터의 틈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였다. 동북아의 관문인 평택항과 우수한 내륙 교통 연계 등의 장점을 고려하여 본다면, 그들의 발전 잠재 가능성은 이제야 용트림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평택에 의한 주변지역의 반란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어, 그들이 가진 풍요로운 들판의 나락들처럼 21세기 평택을 풍요롭게 하였으면 하는 바램을 꿈꾸어 본다.
싸움의 벌판, 이젠 평화의 도시로 평택에는 두 곳에 미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다. 송탄과 팽성 두 곳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과 동두천에 주둔하던 미군부대도 이곳으로 이전하기로 하였으며, 추가로 농경지를 매입하여 군부대로 바꾼다고 한다. 우리 군인도 그 수를 줄여 나간다 하고 주한미군도 감축한다는 계획이 발표되는데 유독 이곳만 군사 및 군사 시설이 증가하는 셈이다. 군인들이 보기에도 이곳이 매우 중요한 곳인가 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싸움 중에 하나가 바로 이곳의 소사전투였고, 청일전쟁 때도 이곳은 양쪽 군대의 치열한 접전의 장소였다. 아직도 몰왜보(沒倭洑:왜군이 몰살당한 보)와 청망평(淸亡坪:청군이 망한 들판)이란 지명이 전해져 당시의 상황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후로는 주한미군의 공군이 이곳에 자리 잡아 터를 넓히고 있어 이곳이 이미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다행이도 이곳에 국제 평화의 도시를 세운다고 한다. 이 땅이 생긴 이후로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젖줄이 되던 생산의 땅이 인간의 욕심과 탐욕으로 인하여 파괴의 땅으로 바뀌었던 곳. 이제 전쟁 연습을 그치고, 파괴를 위한 칼과 총을 생산을 위한 낫과 보습으로 바꾸고, 활주로와 사격장에 배나무 심고 그 그늘에 쉬며 땅이 주는 생명을 노래하는 그런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어떨까.
평택의 북단에서 너른 들판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무봉산(舞鳳山). 누가 이 야트막한 산을 봉황이 춤을 추는 산이라 이름 했을까? 성인이 다스리는 때에만 나타난다는 전설의 새가 춤을 추는 곳이 왜 하필 이곳이어야 했을까? 명당자리 하나 없는 이곳이 어쩌면 봉황이 춤을 출 만큼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먼 훗날에 이곳 평택이 평화의 도시가 되어 한국의 아니 아시아와 세계의 봉황이 되어 날아오를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1) 평택항의 안개발생 (연간)26.3일 : 인천 47.8일, 군산 44일, 평택항의 폭풍일수 (연간)6.8일 : 인천 6.5일, 군산 26.1일
2) 평택항에서 중국 주요항구와의 운송거리 : 대련 537㎞, 청도 630㎞, 천진 870㎞, 영성 389㎞
3) 동아시아 주요 6대 항구 :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선전, 부산, 가오슝
| 경기지오그라피 라는 책이 있었죠? (2) | 2008/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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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경기도, 경기지오그라피, 지리책, 평택, 대한민국>경기도>평택시
출수기 |
이삭이 패는 시기 |
착과수 |
과수나무에 매달려 있는 열매의 개수 |
초장 |
지면에서 잎 끝까지의 길이 |
등숙기 |
이삭이 여무는 시기 |
발아기 |
한 나무 전체의 40~50%에서 눈의 인편이 1~2mm 정도 나올 때의 시기 |
개화기 |
한 나무 전체의 10% 정도가 개화되었을 때의 시기 |
만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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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夏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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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2007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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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기후변화, 논문, 논문발제, 농업, 지평, 대한민국>전라남도>나주시
내일 녹색연합 부설 녹색사회연구소에 가서 생태도시 시민강좌 심화과정 진행에 대한 간담회를 진행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제가 내일이 좋다고 했는데.... 아. 요즘 너무 바쁘네요. 아무튼.. 내일 다시 녹색사회연구소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지난해 '생태도시 시민강좌'를 열심히 들으면서 강의 하나를 정리했던 기억이 나서 그 글을 옮겨 봅니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님의 '개념 강의'였었구요. 당시 글메김꾼 새림님의 녹음된 MP3 파일 등을 이용하여 강의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지난 해 11월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기고를 하기 위해서 정리했던 것이었지요. 생태도시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제 글(?)을 퍼옵니다.
원본 내용은 녹색연합의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작아 홈페이지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강연·조명래 / 정리·HappyG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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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과교육_남미답사를통한지역지리수업(08.08.01)_압축.ppt08년 여름 교원대에서 진행한 내용입니다.
지리과심화연수(08.10.21_여의도고).ppt여의도고에서 최근에 진행했던 내용입니다. 내용은 위 파일과 99% 같지만.. 앞부분 기출 문제 등이 보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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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ppt, 교원대, 남미, 슬라이드, 지리과교육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함께 남미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이 만든 책입니다. 저는 공저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입장이지요. 지금도 이것 저것을 배우기에만도 벅찹니다.
▲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 지평, 푸른길, 2005.11
우 리 지평 선생님들이 답사를 다녀온 몇 개월동안 다시 남미에 관한 글쓰기와 원고 검토를 통해 나온 책이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입니다. 그때, 제가 원고를 썼지만, 들어가기 애매하고, 또한 모자라는 필력때문에 싣지 못한 글이 있는데, 그 글을 블로그에 옮겨볼까 합니다.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은 남미 답사를 시작하였던 2005년 1월 7일의 인천-L.A 구간의 대한항공 기내입니다.
1부 - 커피와 와인에 대한 짧은 단상
2부 - 서로 다른 문화의 뿌리, 커피와 와인이 남미에서 꽃을 피우다.
어 렸을 때 기억을 기준으로 삼자면, 그 쓰디쓴 커피를 하루에 한잔은 마신다. 그 씁쓸한 첫맛은 잊을 수 없지만, 그 달콤한 향기에 익숙해진지는 이미 오래다. 남아메리카 답사를 떠나면서, 부모님께 좋은 선물은 못 사와도 맛있고 향기로운 커피 한 봉지는 들고 오겠노라고 인사를 건네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남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에 갔고, 꼭 보고 싶었던 커피 농장을 찾아 상파울로 인근의 커피농장을 찾았다. 그리고 내 눈앞에 줄지어져 펼쳐진 짙은 녹색의 커피나무를 보았고, 내 발 아래서 커피나무를 품고 있는 붉은 테라록사 토양을 만지면서 내가 마시는 커피의 오늘날 고향은 이곳 브라질이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 가 지구반대편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곳 남미에 도착했듯이, 이 커피나무도 저 먼 곳에서 왔음은 분명하다. 이 커피나무는 그 에티오피아에서 어떻게 흘러들어왔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간단히 말하면, 에티오피아의 야생커피가 북부아프리카나 중동지역으로 퍼져갔고, 동서 교류를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남미가 유럽 제국주의 팽창의 희생양이 되면서 유럽인을 위한 상업적 커피재배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남미의 상징 아이콘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커피는 결국 유럽인들의 문화와 자본이 남긴 하나의 흔적이다. 유럽인들의 종교, 기독교가 남미에 퍼져있는 것과 같이 그들이 가져온 이 커피는 남미 사람들에게 어떤 유럽의 문화를 가져다주었을지 내 눈으로 살펴보려 애를 쓴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 유럽의 커피라는 주제를 떠올려 보았다. 자세히는 몰라도, 일상적으로 커피숍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메뉴 중에 비엔나커피(Wien coffee)가 있다. 이를 보면, 유럽 사람들 중에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커피를 꽤나 좋아했던 사람들인 것 같다. 오늘날 커피는 전 세계인이 찾는 가장 일반적인 음료가 되었지만, 커피 문화가 발달한 유럽의 많은 나라 중에 유독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에서 즐기던 커피가 전 세계 사람에게 소개된 연유는 무엇일까? 비엔나는 브라질만큼 커피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일까? 커피와 브라질의 오늘날의 역사를 알아가는 한 방법으로 커피와 비엔나를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학을 다닐 때, 배낭여행을 하고 온 몇몇 친구들이 들려주던 ‘비엔나커피’이야기를 들어보면 ‘비엔나엔 비엔나커피가 없다’라는 것이다. 농담삼아 이태리엔 이태리 타올이 없는 것과 같다는 이유를 친절하게도 같이 해준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비엔나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셔봤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한다.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한 비엔나 커피 맛이 일품이었다는 말을 보태어 자기 이야기가 믿으라는 그 말이 기억난다. 남미에 가기 전 내가 하루 한잔 이상씩 마시는 커피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나니, 그 상반된 이야기의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비엔나커피는 비엔나에서 만들어지고 유행한 약 30여종의 커피를 총칭하는 것이었다. 보통 우리가 비엔나커피라고 하는 크림이 들어간 커피는 아인 슈페너라고 불리는 것이고, 비엔나(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보다 비엔나 밖에서 비엔나커피가 더 유명해지자, 관광객을 위한 비엔나커피라는 메뉴를 준비하는 커피 하우스가 생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론이다.
이 처럼 유럽 커피의 대표명사라 할 수 있는 비엔나커피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에서 유행한 커피를 말한다. 유럽의 다른 곳보다 이 곳이 커피로 유명하게 된 이유는 역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약 300여 년 전 오스만제국이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은 또 하나의 종교전쟁과 같은 성격을 띠었다. 즉, 오스트리아의 기독교 문명과 오스만제국의 이슬람 문명이 충돌한 것이다. 결과는 오스트리아가 오스만제국의 침략을 막아낸 것으로 일단락 된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의 전사들이 전쟁 중 가지고 온 여러 전쟁 물자 중 하나인 다량의 커피를 오스트리아 빈에 남겨두고 돌아가게 된다. 남겨진 커피콩을 이용해 커피 판매가 이루어지면서 오스트리아는 유럽 커피의 대명사가 된다. 즉, 오스만제국, 이슬람 문명에서 건너 온 것이 커피인 것이다.
현 대의 거대 자본과 대표적인 기호식품인 커피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 스타벅스라던지, 네슬레와 같은 기업을 떠올리면, 커피에는 너무나도 서구적인 향기가 짙다. 그러나 커피의 맛과 문화의 고향은 유럽이 아닌 이슬람이다. 중동 지역의 커피 관목을 모태로 커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고, 이 커피 문화를 추구해 온 곳도 이슬람이었다. 흔히들 유럽문명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품이 커피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서양의 근대사를 보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커피 문화의 뿌리는 이슬람 문명이었다. 기독교 문명으로 대표되는 유럽은 이슬람의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 대표적인 커피의 생산지
Geographics of The Coffee Plant

▲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
가 만히 보면 커피가 생산되는 세계 곳곳을 살펴봐도 유럽에서는 커피가 재배되지 않는다. 유럽인들은 역사 속에서 커피라는 문화를 무역과 교류를 통해 만났고, 그 커피의 맛과 향기, 효과 등에 열광하였다. 하지만, 결코 커피가 가지고 있는 그 문화의 근원은 유럽인들의 자생적인 문화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유럽을 대표할 수 있는 다른 음료를 떠올리라면 거의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중해 일대에서 재배되는 포도를 원료로 하는 와인일 것이다.
과거 그리스와 로마는 포도주의 신 바쿠스를 숭배하기도 하였고, 로마제국은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고 그 곳에 포도 재배를 장려하였다. 로마제국 이후에는 교회가 종교의식에 와인을 사용하면서 유럽의 문화는 포도주와 함께 성장하였다.
지 도에도 나타나듯이 유럽 문화의 손길이 닿은 곳에는 포도밭이 생기고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 지구반대편의 칠레 역시 유럽인들의 손길이 닿아 포도밭이 조성되고 와인이 생산되었다. 정복자들과 함께 들어온 선교사들은 남미에서도 역시 와인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 옛날 로마 처럼 유럽인들의 영토가 확장되고, 그들의 종교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포도밭은 부수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처럼 기독교 문화와 함께 성장한 것이 와인이다. 그런데 이 즈음에서 와인과 커피의 특성을 비교해 보기 위해 와인을 좀 더 일반화 해보면, 와인은 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문명과 형제 문명이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는 원수처럼 지내는 이슬람 문명은 술을 못마시게 하고 있다. 서로 다른 두 문화의 명확한 특성을 와인하나로 표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와인의 허용과 와인의 금지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두드러지는 차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와인을 통해 감성적으로 풍부해진기독교 문명은 문화와 예술을 발달이 부각되었고, 엄격한 율법에 따라 와인을 금지시키고 냉철하면서도 정열적이고 침착한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 문명은 자연과학을 발달시켰다. 서로 다른 음료를 마셔온 서로 다른 문명은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유럽 문화가 동경하는 바쿠스에 대해 다분히 안티 바쿠스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마셨던 음료는 무엇일까? 이곳 남미에서는 그 해답이 바로 풀린다. 바로, 커피다. 기독교의 문화와 그 명맥을 같이 해온 와인이 있다면, 이러한 기독교 문명에 반한 이슬람의 와인 커피가 있었던 것이다. 커피의 별칭이 이슬람의 와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두뇌 활동을 자극하고 각성할 수 있는 커피를 신봉하여 마셨다.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지나친 이성의 활동을 강조한 그들이 유럽의 기독교 문화에 비해 음악과 미술과 같은 예술 부분의 발달이 두드러지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슬람의 자연과학이 유럽의 근대문명 발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실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슬람의 커피가 유럽에 흘러들어가서는 폭발적인 커피 혁명인 두되 혁명이 일어난 후, 유럽의 과학이 급속히 발달하였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다.
참 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 곳 남미에서 시간을 약 500년만 뒤로 돌려놓아도 커피와 와인은 있지도 않았던 상품들이다. 구대륙에서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닌 서로 경쟁관계에 있던 두 음료인 커피와 와인이 이곳 남미에서 어우러져있다. 기독교 문화의 대표주자 와인과 이슬람의 대표 음료 커피는 그들의 인종이 자연스레 뒤썩여 살고 있듯이, 이 곳 남미에서 자연스레 썩여있다. 남미의 문화를 떠올리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유럽문화와 자생문화의 혼합이라는 하이브리드 문화였다. 하지만, 커피 한잔과 와인 한 모금에서는 이 세상의 거대한 두 문화의 만남을 찾아볼 수 있으니 과연 남미는 하이브리드 문화의 원류지역이다.
남미를 향하던 그 비행기 안에서 내 몸 속을 커피와 와인으로 뒤썩어버린 나는 남미 답사의 바른 자세를 가졌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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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기독교, 남미, 답사, 비엔나 커피, 와인, 이슬람, 커피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함께 남미 답사를 다녀온 선생님들이 만든 책입니다. 저는 공저에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입장이지요. 지금도 이것 저것을 배우기에만도 벅찹니다.
▲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 지평, 푸른길, 2005.11
우 리 지평 선생님들이 답사를 다녀온 몇 개월동안 다시 남미에 관한 글쓰기와 원고 검토를 통해 나온 책이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입니다. 그때, 제가 원고를 썼지만, 들어가기 애매하고, 또한 모자라는 필력때문에 싣지 못한 글이 있는데, 그 글을 블로그에 옮겨볼까 합니다.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은 남미 답사를 시작하였던 2005년 1월 7일의 인천-L.A 구간의 대한항공 기내입니다.
1부 - 커피와 와인에 대한 짧은 단상
2부 - 서로 다른 문화의 뿌리, 커피와 와인이 남미에서 꽃을 피우다.
25 일 일정의 남미 답사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남미에서 만나게 될 낯선 문화와 사람들, 경관에 대한 기대가 벅차다. 나름대로 준비해온 자료집과 책들을 꺼내어 읽는다. 미국까지 가는 11시간(?)의 비행 속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보다 졸다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내가 반복하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시간에 따라 주어지는 기내식을 꼬박꼬박 맛나게 챙겨먹으면서 스튜어디어스에게 연신 커피를 달라 와인을 달라 졸라댔던 것이다. 워낙 친절하게 음료를 준다니까 마지못해 마시는 것이 반반이었을까?
장거리 비행기 여행 속에서 책을 꺼내 읽으면서는 커피를 달라고 한다. 책을 보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일은 어울리는 일이다. 커피 안에 있는 카페인이 뇌의 이성적인 활동을 돕고, 충분한 각성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책 읽기가 지치면 잠깐의 잠을 청하거나, 남미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을 위해서는 와인을 한잔씩 달라고 한다. 뇌의 이성적 활동 도우미가 커피이고 뇌의 감성적 활동의 도우미가 와인이 된 셈이다.
비행기가 한참을 날아가고 커피와 와인을 각각 두세번이나 마신 후, 와인잔을 빙그르르 돌리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지금 마신 커피와 와인이 풍부한 곳, 커피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과 한국 와인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칠레를 생각하며, 남미에 가면 이 커피와 와인에 흠뻑 취해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어두컴컴한 비행기속에서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난다. 그 기억 중 하나는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가서, 은행 구석에 있는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뽑아 달라고 졸라대던 내 모습이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코코아 한잔은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은행에 가는 가장 큰 이유였다. 유년시절의 그 어느 날도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갔고, 코코아를 뽑아 먹기 위해 동전 하나를 받았다. 그리고 자판기 앞으로 달려가서 동전 하나를 넣고, 버튼을 꾹 눌렀다. ‘아차!’ 코코아를 누른다는 것이 블랙커피로 잘못 누른 것이다. 내 손에 쥐어진 동전 하나와 따듯하고 달콤한 코코아가 부른 설레임에 의한 실수였다. 몇 초 후에 내 손에 쥐어진 것은 검은 색깔의 향기가 좋은 ‘블랙커피’였다. 집에서는 늘 ‘커피를 마시면 몸에 안 좋아. 그리고 머리가 나빠져.’라며 어른들만 마신다는 음료, 커피가 내 손에 쥐어졌다. 호기심 반, 기대 반에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본다. 집에서 부모님이 마시는 커피의 은은한 향의 기억이 감돈다. 그런데, 맛은 완전한 실망이었다. 쓰디쓴 그 맛은 엄마가 억지로 먹이는 한약보다도 더 씁쓸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왜 이리 쓴 음료를 어른들은 맛있다고 마시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한 모금 맛본 블랙커피를 들고 엄마에게 들고 가 건네주니 엄마도 블랙커피는 싫다고 하시며 손사래를 저으신다. 블랙커피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 어린 시절의 처음 맛본 커피 맛은 참으로 씁쓸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커피에 대한 여러 가지를 물어봤단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커피를 왜 마셔?’부터 시작된 내 질문은 점점 구체화 되고 엄마는 그저 웃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셨던 것 같다. 그 질문 중 몇 가지가 분명히 기억에 남는다.
“엄마, 커피는 어디서 나는 거야?“
- “글쎄, 커피나무에서 자라겠지.”
“그럼 커피나무는 뒷산에도 있는 거야?”
- “아니, 커피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안자라. 이름자체가 외국말이잖아.”
“그럼 어느 나라에서 자라?”
- “응. 브라질”
“브라질? 축구 잘 하는 나라?”
- “응. 지구 반대편에 있는 축구 잘 하는 나라.”
그랬다. 내 기억 속의 브라질은 축구를 잘하고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였다. 더 보태자면, 지구 반대편에서 맛도 없는 쓰디쓴 커피를 생산하는 이상한 나라였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맛도 반대로 느끼는 줄 알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집에 있는 세계대백과 사전을 하나하나 넘기다 커피에 관한 나름대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모든 백과사전이 그러하듯, 식물에 대해서는 주원산지와 주생산지가 어디인지를 표기해두고 있었다. 브라질에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커피나무는 알고 보니 에티오피아라는 듣도 보도 못한 나라가 원산지라고 적혀있다. 그때쯤, 어떠한 상품이나 식물이 많이 나는 곳이 꼭 원산지가 아님을 알았게 되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다양한 힘에 의해 상품도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서울에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그들의 고향이 대부분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도 이와 같으리라.
어른이 되고 언제부턴가는 커피라는 음료 외에 와인이라는 술을 한잔씩 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 TV나 영화에서 보던 와인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선남선녀의 저녁식탁을 더욱 빛내는 붉은 빛깔의 아름다운 술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열두 제자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 외에는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포도주가 점점 대중화 되기 시작했다. 대형 마트에 가면 예전에는 양주와 같은 술이 가장 번듯한 진열대를 차지했으나, 요즈음은 주류 매장의 절반 가량은 전 세계 곳곳에서 생산된 와인으로 진열되어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최근의 웰빙 문화와 와인의 궁합이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한듯 한 느낌을 준다.
좀 특별나다고 생각되는 날에 마시는 와인을 대중화 시킨 것은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오늘날 경제사회 구조가 우리 생활에 침투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전통주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우리가 마시는 와인은 수입을 해온다.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와인하면 뭐니뭐니해도 프랑스 와인일까? 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로 쳐주는 듯한 이미지가 영화나 TV를 통한 간접경험에서 구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이탈리아나 독일의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최근에는 호주 와인도 괜찮다는 평을 들은 적도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은 와인의 그 품질보다도 와인 생산을 위한 혁신 지구(와인 클러스터)로서 더 이름이 나 있어 여러 사람들의 연구대상지역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그래서 온갖 기후를 다 가지고 있는 나라 칠레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수준급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최근, 칠레와 FTA가 통과되고, 칠레 와인의 국내 소비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사실은 지나가는 뉴스로 몇 번이나 들었다. 그래서 그런것일까? 언제부턴가 칠레하면 칠레 와인이 가장 먼저 생각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 2004년도에 흥행했던 우리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이 하던 대사 때문인 것 같다. 당시 사기꾼 역할의 배우 박신양 (최창역 분)이 상대역인 염정아 (서인경 분)와 나누는 대사에서 칠레 와인의 상품가치가 더욱 도렷히 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인경 : 와인 같은 거 먹을 줄은 알죠?
창혁 : 허 와인! 우린 또 와인 좋아하지~ ...칠레 껀 안보이네?
인경 : 칠레와인이 좋아요?
창혁 : 아니! 머, 프랑스꺼 못 먹는건 아닌데... 2차 대전 때 독일 놈들이 프랑스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사람이 을마나 많이 죽었겠어. 근데, 포도밭이 남아 나겠냐구. 오리지날 그냥 다 타 없어졌지. 그리구 나서 다시 심었는데 포도 자라는데 하루 이틀 걸리나. 근데 칠레에는 오리지날이 남아있다~ 이거죠. 잘 모르는 사람들이 프랑쓰 와인~ 프랑쓰 와인~ 찾더라구. 이거 바가지 좀 썼겠는데...
염정아가 살고 있는 집에 여러 종류의 와인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프랑스산 와인이었던 모양이다. 보통 프랑스 와인을 최고로 치는 분위기에서 프랑스와인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모양새가 좀 날것이다. 하지만, 지중해성 기후에서 병충해 없이 자란 칠레의 포도로 담근 와인은 가격대비 품질에서 당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다.
하지만 위 영화 장면에서의 박신양을 생각해보면,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정말 의문스러워서, 최근에 글을 올리면서 다시 재검색해 보았습니다. 검색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박신양의 역할이었던 '창혁'은 역시 그럴듯한 사기꾼인거죠??
물 론 이 설명은 정확한 사실이 아닙니다. 전쟁으로 포도밭이 쑥대밭이 됐지만 이는 나중에 더 좋은 포도밭을 재건하는 데 보약이 됐죠. 예를 들어 ‘샤토 무통 로쉴드 1945년산’과 '슈발 블랑 47년산'은 전설의 와인으로 불립니다.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프랑스 보르도의 양조장들이지만 45년과 47년은 와인이 만들어지는 데 최고의 해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전쟁의 폐해로 수확량은 적었지만 그 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났기에 그만큼 더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와인전쟁>이라는 책을 보시면 됩니다. 번역책으로 나와 있는데 와인을 몰라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칠 레는 서쪽으로 태평양,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은 국가다. 동서로는 겨우 평균 180Km정도에 지만, 남북으로는 길이가 무려 4200Km나 된다. 남한의 남북 길이에 비교하면 10배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 칠레 북쪽은 덥고 건조한 기후가 지속되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만년설이 있을 정도로 하나의 나라 안이지만 기후변화가 심하다.
이런 지형적, 기후적 특성 때문에 주변 국가들로부터 독립될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와인생산국가들이 필록세라(phylloxera)균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때, 칠레는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같은 한 자리에 열한시간을 앉아 있으면서, 서로 궁합이 맞지 않는 커피와 와인을 거푸 마셨다. 은은한 커피향과 달콤씁쓰르한 와인의 맛은 어른이 된 내게 너무나 익숙한 맛들이다. 그리고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이 커피의 왕국이고, 와인의 제국이라는 사실에 곧 이어 맛볼 본토의 커피와 와인에 대한 풍부한 맛의 상상을 해보며, 와인 잔 속에 조금 남아 있는 붉은 포도주가 아까운 듯 마저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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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남미, 답사, 범죄의 재구성, 브라질, 와인, 지리, 지리교사들, 칠레, 커피
도대체 바뀌지 않는 이명박 정권에 뿔났다. 주말이라 쉬고 싶고,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바쁘겠지만... 또 촛불을 들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같이 스터디를 하는 지평 선생님들과 함께 촛불을 밝히러 나갔다. 이번의 주제는 '촛불 답사'이다.
재작년인가 데이비드 하비가 방문 했을때, 한겨레 신문에 칼럼형식으로 좌파적 지리학자라고 소개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한겨레 북 코너에 '<신자유주의〉데이비드 하비 지음·최병두 옮김' 책이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특정 계급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체제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면, 우리가 애써 쟁취해야 할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그런 서평이었죠. 권정화 교수의 지리사상사 책에 급진주의 지리학과 하비의 맑스주의 지리학이 별도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리학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진보적인 지리학과 보수적인 지리학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공간과 지역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어서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연구하면 진보적 지리학인가요? 공간과 경제활동에 따른 계급적 이해와 갈등을 연구하면 되는 건가요? 권교수의 책에 그 단초가 보이긴 하지만, 솔직히 지리학의 진보적 측면과 실천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고민해 본적도 없는 것 같네요.
사회학의 변방으로서의 지리학이, 류우익교수와 대운하 때문에 잠시 뜨고 있지만. 곧 잊혀지겠죠. 지리학의 정체성??? 머리가 아픕니다.
학교가 시청 부근에 있다보니, 거의 매일 한두번 촛불 집회 현장을 지납니다. 때로는 광장으로 들어서기도 하고, 그러다가 촛불을 들고 서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스쳐 지나갑니다. 역사의 현장, 아니 지리적으로 표현하면 지리적 현상과 역사가 만나는 장소를 매일 지켜보면서 마음이 점점 무겁기만 합니다.
지평 샘들과 함께 그 역사적 장소에 서 있고 싶습니다. 시청 광장과 주변 지역을 답사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이번 주말, 함께 답사 갑시다.
7월 5일, 토요일 6시 덕수궁(경운궁) 대한문 앞, 던킨 도너츠 앞에서 만납시다. 함께 저녁 먹고 7시 촛불 답사를 떠납시다. 강요해서도 안되지만, 강요할 수도 없는,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제안해봅니다.이화여고 이순용(지리) 선생님
출처 : 지평 홈페이지 2343 글 전체 인용
그리고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답글 내용이 달렸다.
나가겠습니다.
순용 샘이 좋은 글을 써 주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잘 쓸 수 있는 재주가 없어 또는 진실되게 마음이 집중되지 않아 게으르게 인터넷으로 답글을 달 수 있는 글을 검색해 봅니다.
그래서 좋은 글을 하나 얻었습니다. 긴 글인데 아주 일부만 여기에 인용해 봅니다.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나갑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나의 일생의 일부입니다.
우리 토요일에 만나서 소중한 삶을 일구어 볼까요?
다음은 검색
내용의 일부입니다..
이 동 석(미술평론,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기억은 언제나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그 공간 속에서 대상의 부재는 다시 '부재의 기억'을 부른다. 드 세르토의 말처럼 "기억은 우리를 그 장소에 얽어맨다……. 그것은 사적인 것이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구역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그 기억이다." 그래서 도시의 풍경 속에는 많은 것들이 유보되어 있다. 그냥 스쳐가는 무심한 풍경 속에도 말없는 사람들의 은밀한 기억과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과거"와 "내부로 돌아드는 역사"가 숨겨져 있다.
이처럼 기억이 미로처럼 얽히고 사건들이 지층처럼 퇴적된 도시는, 지도상으로 확인하거나 고층빌딩의 전망 라운지에서 조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는 평면적으로 계량화될 수 있는 개념적 공간이 아니고, '묵주의 낱알같이 서로 분리된 감각적 지각과 이미지들'의 집합도 아니다. 도시는 과거와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적 지층을 지니고 그 속에서 전후방으로 작용하는 의식적 지평을 가진 공간이다.영등포고등학교 박병석(지리) 선생님
출처 : 지평 홈페이지 2343 글의 답변 내용 전체 인용
촛 불 답사의 공간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답사는 이렇게 기획되었다. 촛불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과 그 경관에 대한 신문화지리적, 정치지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였지만, 나의 생각은 그에 그칠 뿐.. 고수님들의 생각은 깊었다. 난 따라 다니면서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배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바쁜 일을 제쳐두고 이 번 집회는 공부라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박병석 선생님이 올려주신 논문도 한 편 읽고 갔는데.... 한글이지만 너무 어렵다. 내 지적 소양의 결핍을 현장에서 채워 보고 해석해보는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아쉽게도 참여키로 한 선생님들은 몇몇... 대부분 가정의 평화를 위해 주말 야간 답사는 어려워하셨다.
6시쯤에 이순용 선생님, 김봉수 선생님을 만나 메밀 국수 한 그릇씩 먹고... 덕수궁 대한문 건너에 앉아 문화제를 관람하였다.

▲ 6시 반이 넘었을 뿐인데...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덕수궁 앞)
1인 미디어의 발달을 볼 수 있는 어떤 블로거의 와이브로 생중계 모습도 이제는 집회나 문화제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열심히 중계하여서 오늘 현장에 오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내용을 전달하였기를 기대한다.
▲ 1인 미디어의 위용, IT Korea의 위용, 거리에서의 Web 2.0의 모습. 박수!!!
좋은 화면을 잡아내기 위해 외로운 고공 투쟁을 하는 이가 있었으니... 대책위 카메라 맨인듯 싶다.

사실 저 자리 탐난다. 저 위에서 사진을 마음껏 찍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고 싶은 것은 카메라를 든 누구나 가지는 바람일 것이다.
문화제는 계속 진행된다. 몇 차례 발언도 듣고 노래도 불렀다. 다행히(내 생각에...) 이번 7.5 59차 촛불문화제에서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서울 시민들의 투표 참여와 올바른 선택만을 바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선거법과 관련하여 교사는 발언을 하면 곤란하다.)

이 선생님께서도 교육감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미친 교육을 몰아내려 전교조가 팔을 걷어 붙였지만, 일반 시민들은 전교조에 대한 반감이 많다. 나 역시 이해하는 부분이 많은 내용이지만, 현 시점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전교조 위원장님은 4.15 교육 조치 철회를 위하여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 마저도 감행하지 않았었나....
한참 문화제를 관람하고 있는데.... 우리 자리로 낯익은 얼굴이 앉았다. 사실 난 모르고 있었는데.. 이화여고 이순용 선생님께서 위원장님이랑 사진 한번 찍자고 그러신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정진화 위원장이 우리 지평 선생님들 옆에 자리하셨다. 단식 투쟁 기간 내내에도 지지 방문 한번 하지 못했었는데! 고생하셨다는 말 조차 건네지 못하고 사진만 하나 덜렁 찍었다.
사실 우연이지만, 우리 지평 선생님들이 있는 곳에 전교조 위원장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ㅋㅋ 역시 '지평' 대단하다!

날이 저물고 문화제를 마쳤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서 행진을 준비한다. 오늘도 다치는 사람이 없어야 할텐데... 라며 마음을 졸였다.
시민사회단체장들과 종교인이 앞장 서서 행진을 한다. 그들이 시민들을 위한 인간 방패 역할을 자처하였다고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쥬는 이런 것 아닐까? 가만히 앉아 있는 권력자들은 반성하시라!

그들을 뒷따라 촛불소녀상(?)이 사람들의 대오를 이끌었다.

거리에서는 열심히 촛불 답사 중인 박병석 선생님을 만났다. 한 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이 거리를 돌아 다니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으셨다는 것이 느껴졌다.
▲ 영등포고등학교 박병석(지리) 선생님
이 선생님이 함께 쓴 '지리 밖 교실여행' 난 그책이
아니었으면
지금 지리 선생님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책을 써 주신 고마운 선생님!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럽다.
행진이 시작되었다. 남으로 행진하여 숭례문과 을지로를 돌아 조로로 향하여 다시 광화문까지 가는 행렬이었다. 행렬의 시작과 끝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오늘 문화제에 함께한 지평 선새님들은 해체 모여를 통해 각자의 깃발을 찾아갔다. 난 녹색연합 깃발을 찾으러 갈까 하다 너무 앞서 가기에... 민주동문회 깃발 아래로 찾아갔다. 간만에 만난 헌선이형과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 행진 中 | 저 멀리 포스트 타워(우체국)이 보인다.
종각즘에서 행진 대오가 멈추었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이곳 부근에서 대오가 조금 나누어졌다고 한다. 민동 사무국장을 하고 있는 창훈이형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시길래 이 곳에서 나도 형의 사진을 하나 찍었다.
▲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창훈이형! 집회와 막걸리의 선봉 장!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어중간하다. 갈까? 말까? 조금 더 있으면서 재미난 구경을 하게되었다.
정말 시위를 축제처럼 즐기던 청년들! 나도 저럴때가 있었는데......
직접 동영상을 찍어 이 학생들의 재기발랄함을 YouTube에 띄웠다.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보았던 경상대 상경 투쟁단의 즐거운 유희에 마음껏 박수를 보내고 왔다.
빼는 왜 넣노
라고 적힌 단체 티를 입고 있던 그 친구들의 유쾌발랄한 몸짓과 대지를 뒤흔드는 그 에너지에 무척 감동 받았다.
학창 시절이건 혹은 사회인이 되고나서건 거리를 행진하면서 오늘처럼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절대 다수의 지지에서부터 나오는 자신감이라 여겨졌다. 아마 이 경상대 친구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질투날 정도로 잘 놀고, 선전전도 잘하는 그대들의 모습, 그 에너지 뒤에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주는 선전전은 그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그만큼 지금의 정부가 잘못되었다는 것의 반증이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우리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정말 미국 쇠고기 먹고 싶지 않습니다. 미친 교육 벗어나게 해주세요.
우리의 촛불과 몸짓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잊지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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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경상대, 김봉수, 남대문, 덕수궁, 데이비드 하비, 도시, 박병석, 블로그, 시청, 유튜브, 이순용, 전교조, 정진화, 종각, 종로, 지리, 지리학, 지평, 진보, 촛불, 총학생회, 학생회, 대한민국>서울특별시>중구>서울시청
위 내용은 용문중학교 지리/사회 수업방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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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학생들과 한 수행평가 모습 (0) | 2008/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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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의 수업 (2) | 2008/04/04 |
| 새로운 날 맞이 (0) | 2008/03/03 |
Tag : 수행평가, 주성영, 토론, 대한민국>서울특별시>성북구>안암동2가>용문중학교
지난 한 주 1학년 학생들과 수업이 참 안되더라. 왜 그럴까?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첫인상은 꽤나 후한 편인것 같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기도 했는데...
점점 수업의 만족도까 떨어져간다. 고민했다.
사실 사정은 이러하다. 지난 몇년가 긁어 모아온 ppt는 바이러스를 먹었는지... 열리지 않는다. 그에 따라 난 준비안된 교안으로 이리헤매고 저리 헤매다 보니... 한주 내내 괜시리 짜쯩만 냈던 것이 아닌가?
ppt를 넘길때 처럼 다음 장면으로의 전환이 2-3초 내라면 아이들은 떠들거나 집중도가 낮아지지 않을테지만.... ppt가 열리지 않으니 교과서 봤다가 컴퓨터 화면 봤다가 이것 저것 탐색기로 찾고 버벅거리는 컴퓨터로 이것 저것 찾고 있는 순간에 아이들이 떠들지 않는 다면 아이들이 비정상일테고, 만약 떠들지 않았다면 그 동안 내가 아이들을 아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다시금 그 예전 ppt들을 다운 받을까? 어짜피 내가 만든 ppt로 수업한것도 아니고 그냥 좀 양질의 ppt를 구해서 썼을 뿐이니 다시 다운 받는 것은 시간 문제일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내가 일부 재수정 편집을 하긴하였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도 않은 그러한 ppt를 다시금 다운 받는 다는 것은 억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새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컴퓨터를 못믿으니 이제는 교안을 만들면 바로바로 인터넷 수업 카페 (http://cafe.naver.com/ymoon)에 올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몇장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용정리는 내가 안한다. ㅎㅎㅎ 그냥 다운 받은 것 편집만 했다. 많은 자료도 필요없다. 4-5가지 자료를 활용하면 그 중 1-2가지를 주 텍스트로 삼고, 그냥 한글에다가 긁어 붙이고 약간의 편집만 해주었다. 그래서 나온 샘플은...
1. 교육과정 평가연구원 사회방 자료실의 텍스트 및 수업도입 구조를 주 텍스트로 사용하였다.
2. 에듀피아의 내용정리도 참고하였으며,
3. 우리국토 중학생용(나와 용형, 해수, 주영이가 만든 책. ㅇㅎㅎ)의 PDF도 이용하였다.
4. 지학사에서 준 교상용 자료 Cd에서 몇몇의 사진 및 지도 이미지를 빌려오기도 하였다.
그림으로 인쇄할 때는 snagIt 8.0을 사용하였는데, 그 기능에 만족한다. 깨끗하게 jpg를 생성하였고, 여백을 날리는 기능도 자동이 아니어서 그렇지 상당히 편리했다.
그래서 인터넷 수업 카페에 이미지를 포스팅하고 다음부터 수업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일단... 수업거리가 있으니... 수업은 잘 된다. 그리고 내가 도외시 했던 분분도 정리가 되어 있으니 일단은 가르친다. 그래서 이 방법이 좋다.
ppt를 만드는 것은 너무 높은 수고스러움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냥 인터넷에 올리고 그 내용을 노트 필기 내용의 대안으로 사용하며, 학생들은 집에서 그 파일을 출력하여 보고 (파일을 pdf 혹은 hwp 형태로 제공함.) 예습도 복습도 하라 하니 일단은 마음이 놓인다.
간만에 한 수업준비였을까? 교실에 서는 내 모습이 조금 더 당당해지는 것 같다.
사실 난 매일매일을 질 수업 준비를 위해 거의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붙는다. 나는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준비가 내가 교단에설 우리학교 학생들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다른 '지리'와 관련된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일과 공부였음을 인정한다. 그래서인가? 작은 것에서의 행복.... 사실 우리 학생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으로 인정을 받아야 밖에서도 '나 지리 공부 좀 했소?'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간만에 한 수업준비... 내 마음이 설렌다. 교생이 된 것 같은 기분, 1년차의 그 기분을 되찾은 것 같다.
우리 학교 학생들을 위한 교안 몇장을 만들면 그래도 하루 저녁이 다 가버린다. 그래서 내가 하는 다른 일은 또 엄청 밀리게된다. 그래도 즐겁다. 당당해진다는 기분은 아마 이런것일 것이다.
| 우리 학생들과 한 수행평가 모습 (0) | 2008/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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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의 수업 (2) | 2008/0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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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수업, 지리, 대한민국>서울특별시>성북구>안암동2가>용문중학교
올 한해 제가 꾸려나갈 반이 3학년 5반입니다. 2006학년도의 신입생들 중 우리반이었던 학생들이 산술적으로는 1/5 정도 들어올테고... 또 작년 2학년 수업도 했었고... 올해 횟수는 적지만 도덕이라는 교과목도 가르치고, 또 담임을 하다보면... 아마 어떤 몇몇의 학생에게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어떤 인생이 청소년이 되어 사회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눈을 갖누는데 기초 지식을 제공하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바로 저이겠네요.
조금은이 아니라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겠어요.
나는 대학교수도 아니고, 아주 학문적으로 또 인격적으로 완성을 이룬 사람이 아니지만, 어떻게 저떻게 햇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저버린적은 한시도 없지만,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순간 역시 그리 많지 못합니다.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까요?
매 학년 수업을 마치고 수업 평가서를 받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학생들이 원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받아보고 반성을 많이 합니다.
일단 그 친구들 이야기로 저는....
1. 재미가 무척 없는 선생님이다.
2. 로케트 펀치를 가끔씩 날린다.
3. 비교적 수업만 열심히 하는 편이다.
정도 입니다. 안좋은 이야기만 적어본건데....
첫번째, 재미있으려 노력하야겠는데ㅔ, 어쩌죠.. 개콘을 계속 보고 개인기를 연습해야할까요? 정말 유머러스한 선생님들 보면 저도 참 부럽습니다. 어떻게든 노력을 해봐야지요.
두번째, 로케트 펀치.... 아.. 반성 많이 합니다. 나는 꿀밤인데... 아이들이 느끼기엔 무지막지한 공권력의 폭력이었나 봅니다. 사실 그런적도 있었겠지요. 제일 반성 많이 해야할 부분인듯하고...
세번째, 종치면 그만 수업 해달라고하는 그 이야기지요. 맞습니다. 이것도 하면 안되요. '난 열정적이야. 그러니깐 2~3분이라도 더 수업하는거지..'라면서 가끔은 나를 포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좋은 선생님은 그 수업을 완벽하게 설계하고 들어가서 주어진 시간안에 학습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선생님이겠지요. 실컷 놀고 다른 소리하다가 이까지만 하자고.... 발동동구르는 아이들을 잡아 놓는 것도 올해는 안해야겠습니다.
아~~ 애들을 몇년을 더 키워야 길가다 만난 그 녀석들이 "샘! 맥주 한잔 사줘요!"라고 할까요? 지금은 빵 한조각 사내라고 하는 그런 녀석들인데요. 기다려집니다.위의 세가지를 포함하여 정말로 내가 되고 싶은 선생님의 모습은 '징검다리 선생님'입니다. 나를 통해 3년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학생이 있겠죠. 그 친구들에게 저는 꼭 기억되는 사람으로는 남고 싶지 않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이,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녹아들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러면 이 친구들의 어디엔가에는 나의 손길이 조금은 남아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꼭 그 손길이 그 친구들의 앞날에 행복과 가까워지는 길을 제시하는 흔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같이 해봅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면, 그 친구들은 정말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나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요? ㅎㅎㅎ 그러다 만나면 내가 맥주한 잔 사면, 그것 역시 나의 행복이겠죠.....
| 우리 학생들과 한 수행평가 모습 (0) | 2008/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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